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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 입시의 취지는 좋았다. 성적으로 줄을 서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다변화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수능은 수능대로, 논구술은 논구술대로, 학생부는 또 그것대로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부담을 토로한다. 

 

 하지만 궁금하다. 그렇다면 대체 대학입시에서 어떤 다변화를 기대했단 말인가. ‘물구나무서기 전형’이나 ‘늦잠자기 전형’이라도 있어야 할까? 

 

 어떤 입시라도 기본적으로 ‘공부머리’는 필요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학은 결국 공부, 학문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구나무서기를 잘 하는 건 장한 일이지만, 늦잠도 허리아픈 일이지만, 학문을 하는 데 있어 딱히 감안할 이유가 없는 재주들이다. 

 

 논구술을 가르치다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수능 점수가 잘 나오는 애들이 논구술도 잘 한다. 당연한 일이다. 논구술이든 수능이든 결국은 ‘공부머리’라는 하나의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들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장기적으로 가장 좋은 입시 대비는 이러한 ‘공부머리’를 키우는 일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누구나 다 아는 능력이다. 이해력, 비판 능력, 창의적 확장 능력 등이 공부머리의 속성에 해당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한가하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키득거린다. 같은 시간에 책을 읽을 수도, 토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입시를 탓하고 제도를 탓한다. 

 

 물론 제도가 완벽한 건 아니다. 문제점은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어떤 제도 하에서든 대학에 가고자 한다면 근본적인 필요조건은 변치 않는다. 공부머리를 키워야 한다. 당장 스마트폰부터 치울 일이다.